우리가 결혼해서 처음 같이 살았던 작은 아파트는 빛이 잘 들지않는 2층이었지만 맑은 날씨의 오전에는 옅은 빛이 조각조각 비치곤 했다. 화창한 일요일 아침, 나뭇잎 사이로 빛이 살그머니 들어오면허전한듯 비어있는 거실벽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얼클루나 에바카시디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CD 한 장이 끝나면 한 시간이 지났겠구나, 하고잠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음 CD를 골랐다.드리퍼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천천히 흘러내리면그제서야 커피가 식어버린 걸 알아차렸고그러면 다시 원두를 갈고, 다시 따뜻한 커피를 만들었다.그렇게 빛이 사라질 때까지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없이 앉아 음악을 들었다. 봄이었고, 베란다에 심어둔 장미가 바람에 흔들렸다.에바 카시디는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노래해서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바랄 것이 없을듯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이 채워져오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흐르는 꿀처럼 느리고 달큰하게 지나갔다. -사람들이 신혼을 어떻게 보내는지 나는 잘 모르고열렬한 사랑, 기선제압을 위한 신경전,어려움을 동반한 적응과정, 다시 없을듯한 애틋한 시간,이런 종류의 설명들이 신혼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신혼이라는 얘기에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수없이 반복된 이런 모습의 일요일 아침이다.세간을 채울 돈이 없어 그저 비워두었던 거실,등을 기대고 앉은 빈 벽,거실에 퍼진 커피향기,현의 울림이 좋던 스피커 소리와 일렁이는 빛조각,잠깐씩 고개를 돌려 바라본 나란히 앉은 옆모습,내 마음에 천천히 밀려오던 부드럽고 따뜻한 평화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