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사만다는 '리틀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고농사욕에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작년의 흉작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다짐하며농사 엘리트 지인에게서 튼실한 모종을 모셔왔지요. 의욕은 만평농사러 급기야 이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기 위해저명한 프로농사러,아부지를 초빙하기에 이르렀습니다.아부지는 비료가 중요하다 백번 강조하시며경상남도에서 퇴비를 싣고 올라오시기로 했지요.한 때 비료공장에 다녔던 아부지는버려진 버섯둥치와 달이고 남은 한약재들과 용의 비늘과 요정의 눈물을 섞어족보없는 비료를 창조하곤 했는데결과는 늘 대단했어요.아부지를 기다리는건지 퇴비를 기다리는건지효심과 세속성 사이의 애매한 설렘이 맴돌았습니다.올해는 드디어 흉작을 면하겠다는 마음이 들었구요.아부지의 트렁크를 열어본 저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몹시 익숙한 것이 보였어요.우리 동네 화원에도 파는 그것,포장 비닐까지 익숙한 ‘그냥’ 퇴비.이걸 굳이 경남에서 싣고 올라오셨냐고 시큰둥히 여쭙자아부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이것만한 게 없더라.바질의 싹이 트지 않는 이 곳에불신의 싹은 잘 틉니다. 이 기세를 알아차린 프로농사러는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그 움직임에 어영부영 보조를 맞추다보니공방의 업무가 마비되었습니다. 더덕 여기에 잠들다리틀 포레스트가 블록버스터도 아닐텐데어쩐 일인지 제니도 곧 이 영화를 보았고아니나다를까 마음에 농사불이 붙은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리틀 포레스트는 농촌진흥회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보기만 하면 백발백중모종 혹은 씨앗을 들고 나타나 흙을 갈아엎습니다.흉작커플 무의미한 의논 경쟁적 흉작제니는 먹고 뱉은 사과 씨앗을 싹티우겠다고 다짐합니다.그게 싹이 나겠냐고 모두가 의구심을 표했는데싹이 나서 할말이 없고심지어 무럭무럭농사가 한창이니 호두도 한 손 거들겠다고 나섭니다. 잡초 압사 농법 누구를 위한 농법인가이곳은 오랫동안 칡과 쑥이 점령하고 있었던 땅.모든 농작물이 박멸될 것 같은 험지이지만 관점을 바꾸면 나름대로 풍년인 것도 있습니다. 민들레 풍년냉이 풍년연둣빛 싹을 틔워 해를 향해 몸을 뻗어가는 여린 존재,그것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더디지만 찬찬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실수를 거듭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동안 쉬이 실망하지 않고 처음의 호기심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미미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성장하겠지요.조그만 싹을 내려다보며 가구를 만들만큼 거대한 나무들의 시작도실은 이토록 미약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보리의 시작이 그러하였듯.